Brahms - Symphonie Nr.3 en fa majeur op.90
Serge Koussevitzky
Boston Symphony Orchestra
EMI LA VOIX DE SON MAITRE
- RCA VICTOR
1945년 recording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1874년-1951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유럽의 지휘자들중에 미국에 건너가 성공한 첫 번째 지휘자겸 20세기 초반 미국 지휘계의 전설로 통하는 거장이다.
Rambusek에게 콘트라바스를 배우고 20살에 볼쇼이극장 관현악단에 입단하여 수석주자로 활동하면서 솔로이스트로 명성을 얻는다. 특히 러시아의 국민악파 작곡가인 라인홀드 글리에르(Reinhold Gliere)의 도움으로 콘트라바스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였고, 초연공연도 하였다.
구세비츠키는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인의 딸과 결혼하면서 서유럽무대로 연주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경제적 도움을 받아 베를린에서 당대의 지휘 거장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에게 지휘를 배우게 된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한이래 쿠세비츠키는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와 모스크바에서 악단을 결성하여 러시아와 서유럽등으로 순회공연을 갖는다. 러시아 혁명이후 그는 자신의 교향악단을 페트로그라드 시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활동하다가 다시 쿠세비츠키 콘서트를 조직하여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라벨의 관현악작품들 연주하였다. 1924년 피에르 몽퇴 후임으로 보스톤 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되어 1941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미국 지휘자로 활동하게 된다.
보스톤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 그는 쿠세비츠키 - 피에르 몽퇴 - 샤를 문쉬 - 에리히 라인스도르프로 이어지는 동교향악단의 황금기를 연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1940년대 초반 탱글우드 음악교육프로그램과 여름 음악콘서트 처음으로 개설하였고,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하여 사뮤엘 에들러, 사라하 캐드웰 등 당대의 지휘자겸 작곡가를 양성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쿠세비츠키는 유진 올만디이전에 미국에서 시벨리우스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의 권위자로 평가받았고, 베토벤, 멘덴스죤,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라벨과 드뷔시 등의 작품들에도 호평을 받았다. 주로 고전낭만주의풍의 지휘의 표본을 보여주었던 지휘자로 평가받았다. 훗날 탱글우드 음악센터는 쿠세비츠키상을 재정하여 오자와 세이지, 마이클 틸슨 토마스등에게 수여하였다.
#classic #BostonSymphony #SergeKoussevitzky
#브람스교향곡3번 #클래식음반 #엘피음반 #세르게이쿠세비츠키 #수안보 #화천리발화동
YouTube에서 'Brahms: Symphony No. 3 Koussevitzky / Boston S.O. 1945, restored' 보기
https://youtu.be/e6QIJ0PPRzs
Serge Koussevitzky
Boston Symphony Orchestra
EMI LA VOIX DE SON MAITRE
- RCA VICTOR
1945년 recording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1874년-1951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유럽의 지휘자들중에 미국에 건너가 성공한 첫 번째 지휘자겸 20세기 초반 미국 지휘계의 전설로 통하는 거장이다.
Rambusek에게 콘트라바스를 배우고 20살에 볼쇼이극장 관현악단에 입단하여 수석주자로 활동하면서 솔로이스트로 명성을 얻는다. 특히 러시아의 국민악파 작곡가인 라인홀드 글리에르(Reinhold Gliere)의 도움으로 콘트라바스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였고, 초연공연도 하였다.
구세비츠키는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인의 딸과 결혼하면서 서유럽무대로 연주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경제적 도움을 받아 베를린에서 당대의 지휘 거장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에게 지휘를 배우게 된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한이래 쿠세비츠키는 정식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와 모스크바에서 악단을 결성하여 러시아와 서유럽등으로 순회공연을 갖는다. 러시아 혁명이후 그는 자신의 교향악단을 페트로그라드 시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활동하다가 다시 쿠세비츠키 콘서트를 조직하여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라벨의 관현악작품들 연주하였다. 1924년 피에르 몽퇴 후임으로 보스톤 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되어 1941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미국 지휘자로 활동하게 된다.
보스톤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서 그는 쿠세비츠키 - 피에르 몽퇴 - 샤를 문쉬 - 에리히 라인스도르프로 이어지는 동교향악단의 황금기를 연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1940년대 초반 탱글우드 음악교육프로그램과 여름 음악콘서트 처음으로 개설하였고,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하여 사뮤엘 에들러, 사라하 캐드웰 등 당대의 지휘자겸 작곡가를 양성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쿠세비츠키는 유진 올만디이전에 미국에서 시벨리우스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의 권위자로 평가받았고, 베토벤, 멘덴스죤,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라벨과 드뷔시 등의 작품들에도 호평을 받았다. 주로 고전낭만주의풍의 지휘의 표본을 보여주었던 지휘자로 평가받았다. 훗날 탱글우드 음악센터는 쿠세비츠키상을 재정하여 오자와 세이지, 마이클 틸슨 토마스등에게 수여하였다.
#classic #BostonSymphony #SergeKoussevitzky
#브람스교향곡3번 #클래식음반 #엘피음반 #세르게이쿠세비츠키 #수안보 #화천리발화동
YouTube에서 'Brahms: Symphony No. 3 Koussevitzky / Boston S.O. 1945, restored' 보기
https://youtu.be/e6QIJ0PPRzs